아무개 님에게,

아무개 님에게 여러 분들이 좋은 말씀을 남겨주셨지만, 저도 한 마디 해볼까 합니다.

어린 나이에 힘겨운 숙제를 만났군요.
살아간다는 것은 즐겁기만하지도, 괴롭기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.
즐겁게만 살아가는 사람도 없고, 괴롭게만 살아가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.
지금 만난 그 숙제에 대해서, 이렇게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.

이 숙제는 내가 풀라고 신이 낸 숙제다. 머리로만 풀지 말고, 몸으로, 때로는 피를 철철 흘리면서, 온 힘을 다해서 풀어보라고 내준 숙제다.

왜, 나에게만 이런 숙제가 주어졌는가?
어쩌면 이 질문이 절실하게 가슴속에서 울리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.

진실은 아마 이것이 아닐까요?
나 스스로 원했기 때문에......

더듬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말을 하기 시작하면, 그 짐이 가벼워집니다. 남 앞에서 말로 한 몫 볼 욕심을 조금 버려보는 거지요. 내가 말더듬이라고 생각하면서, 동시에 말더듬이가 아닌 척 하려니 얼마나 힘겹겠습니까? 아닌 척 하는 마음을 조금만 내려놓아보는 거지요.

아니면, 말이 의식되면 조금 더 그 부분만 끌어주면서 말을 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. 대단히 어눌하게, 어색하게 들리겠지만, 본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어눌하게 들리지는 않으며, 어눌하게 들리더라도, 말을 못하는 것보다는, 그래서 사네 죽네 하는 것보다는 백 번 낫지요.

또 하나는 말더듬이 심한 경우는, 사람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. 이런 마음을 한 번 내보십시오.

왜 내가, 비록 내일 죽을 망정, 사람을 그렇게까지 무서워해야 한단 말인가? 도대체 남이란 것이 나에게 무엇이란 말인가? 왜 나는 나 스스로 자청해서, 다른 모든 사람들을 상전으로 받드는 노비여야 한단 말인가? 왜 그렇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? 내가 그 남이란 것들에게 갖은 아양을 떨 때(안더듬고 매끈하게 말하려고), 남들이 나에게 준 것은 과연 무엇이었던가? 왜 내 인생이 망가지게 하면서까지 나란 놈은 남에게 죽을 힘을 다해서 충성하려 한단 말인가? 이제부터는 나 자신을 위해서 살아볼 때도 되었지 않은가? 이제 생각을 조금 그만 하고, 살아볼 때도 되었지 않은가?

그런 뼉다구 속 깊이 사무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가 있어야 합니다.

말을 못해서 괴롭네 어쩌네 하는 게 아니잖습니까? 매끄럽게, 남들처럼 말하지 못해서 그러는 게 아닌가요? 뱁새가 황새처럼 걸어야만 걷는 거라고 욕심을 부리는 것과 다를 게 뭐가 있겠습니까? 그것도 나를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, 남 비위맞춰주기 위해서....

이제 한번 결단을 내려보십시오.

말더듬이란 원래 없다. 말을 하려고만 한다면 못할 리가 없다. 두뇌도, 발성기관도 다 정상이므로. 오직 나 스스로 다른 이유로(기가 죽었는데 안 죽은 척 하다가, 위축 되었는데 안 그런 척 하다가, 친하지 않은데 친한 척 하다가, 존경하지 않는데 존경하는 척 하다보니까, 등등 다른 어떤 정직하지 못한 마음 때문에), 말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. 이런 생각을 해서 밀고나가든가,

아니면, 나는 말더듬이다. 안 그런 척 하지 않겟다. 100%는 아니라 하더라도, 0.1% 씩 만이라도, 내가 말더듬이임을 인정하겠다. 0.1% 씩 이라도 인정해보면, 내가 말더듬이라 해서 뭐가 달라진다거나, 내가 부족해진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, 홀가분할 것입니다.

아무개님 한테 이런 어마어마한 숙제가 주어진 것은, 아마도, 아무개님이 귀한 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. 동서양의 수많은 성인들은 말씀하셨습니다. 하늘이 큰 사람을 낼 때는 반드시 먼저, 그 사람을 괴롭힐 대로 괴롭힌다고. 피를 철철 흘리게 하면서 죽지 않을 정도로만......

그런 괴로움을 겪고 나서야 사람이란 비로소 조금이나마 철이 드는 게 아닌가 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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